
요즘 화제인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를 뒤늦게 정주행하다가 '임성근'이라는 셰프를 처음 알게 되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화려한 언변과 제스처, 어딘가 모르게 풍기는 분위기가 실력보다는 말빨로 승부하는 소위 '사짜' 느낌이 났기 때문이다. "그냥 방송 재미있게 하는 캐릭터 하나 나왔구나" 하고 가볍게 넘겼다.
그런데 회차를 거듭하며 그가 미션에 임하는 태도와 요리하는 과정을 지켜보다 보니, 묘한 기시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무릎을 쳤다.
"이 사람, 나랑 너무 닮았는데?"
요리와 개발, 분야는 다르지만 그가 문제를 해결하고 생존해 나가는 방식은 현재 1인 개발자이자 사업가로 살아가고 있는 나의 방식과 소름 돋게 맞닿아 있었다.
1. 빠르게 만들고 검증한다 (MVP와 린 스타트업)
그는 고민할 시간에 일단 팬을 돌린다. 재료를 넣고, 맛을 보고, 아니다 싶으면 빠르게 수정한다.
나 또한 그렇다. 책상 앞에서 완벽한 설계를 하느라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일단 핵심 기능만 구현해 빠르게 앱을 출시(Deploy)한다. 시장의 반응이 없으면 폐기하고, 반응이 오면 고도화한다. '실행이 곧 검증'이라는 태도가 뼈속까지 닮아 있었다.
2. '5만 소스좌'의 빅데이터
그에게는 '5만 소스좌'라는 별명이 있다. 수많은 레시피 데이터가 머릿속에 있기에 어떤 재료가 와도 당황하지 않고 조합해낸다.
나 역시 수많은 앱들을 개발하고 출시하며 나만의 데이터를 쌓아왔다. 어떤 UI가 사용자를 편하게 하는지, 어떤 비즈니스 모델(BM)이 수익을 내는지 책이 아닌 경험으로 안다. 그가 소스를 조합하듯, 나는 내가 가진 코드와 경험을 조합해 세상에 통하는 '맛있는 서비스'를 만들어낸다.
3. 실패에 연연하지 않는 회복탄력성
요리가 마음대로 안 될 수도 있다. 평가가 안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아, 이게 아니네?" 하고 툭 털고 다시 시작한다.
1인 개발자의 삶도 매일이 버그와, 정책 위반과, 무관심과의 싸움이다. 실패에 매몰되면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없다. 그에게서 실패를 데이터로 치환해버리는 쿨한 멘탈을 보았다. 오히려 실패를 많이 해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였다.
4. 압도적인 물량, 그것이 곧 전략이다
무엇보다 내가 그의 팬이 되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는 '요리 천국 미션' 때문이었다.

그는 참가자들중 가장 빨리 요리를 만들었으며, 가장 많은 요리를 만들기도 하였다. 결과만 놓고보면 해당 미션에서 올라가진 못했지만 최종 누적 점수를 합산해보니 총점 867점으로 전체 1위였다.


이 지점에서 나는 전율을 느꼈다. 이것은 내가 시장에서 살아남는 방식,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이 깜짝 놀랄만한 단 하나의 '명작(Masterpiece)'을 만들기 위해 몇 년을 묵히는 장인 스타일이 아니다. 대신 남들이 하나를 고민할 때 열 개를 만들고, 백 개를 시도하는 '물량 승부'를 선호한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깊이가 얕다고, 이쁜 쓰레기를 만든다고 폄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중요한 건 단 한 번의 홈런이 아니다. 꾸준히 쌓아 올린 안타들이 모여 만든 거대한 점수다.
"대단하고 멋진 하나보다, 실용적인 다수로 승부를 본다."
그가 보여준 867점은 나의 그 전략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숫자 같았다.
마치며
'요리 천국' 미션에서 도전에 임하는 그의 눈빛을 보며 절로 웃음이 나왔다.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아서, 그가 어떤 절박함과 즐거움으로 그 자리에 서 있는지 너무나 잘 알 것 같아서였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했던 나를 반성한다. 그는 '사짜'가 아니라, 자신만의 확실한 승리 방정식을 가진 치열한 '승부사'였다.
오늘부터 임성근 셰프의 팬이 되기로 했다. 그리고 나 또한 내 자리에서 지치지 않고 더 많은 코드를 쌓아 올리며, 나만의 867점을 만들어가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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