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포항에서도 꽤 외진 시골에서 20년 넘게 자랐다. 솔직히 말해 지금 당장 그곳에 집을 공짜로 주고 차를 내어준다고 해도 다시 살 자신은 없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에와서는 정말이지 주변에 할 수 있는 게 너무 없다.
주변에 보고 자랄 것이 한정적이었던 그 좁은 환경 탓이었을까. 아니면 서로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 너무 달라져 버린 탓일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고향 친구들과 대화의 결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만나면 주로 공장 3교대나 지게차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데, 내 생활과는 너무 달라 깊이 공감하기가 어렵다. 포항이란 동네 특성상 부모님 세대부터 포스코나 하청업체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많았고, 자연스레 내 친구들의 최종 목표 역시 포스코 입사였다. 반면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거의 유일하게 개인사업자의 길을 걷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대화의 주파수가 어긋나기 시작했고 그렇게 우리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누가 맞고 틀린 문제는 아닐 것이다. 출발선에서는 아주 미세했던 각도의 차이가, 시간이 흐르고 각자의 먼 길을 걸어오면서 도저히 좁힐 수 없는 간극으로 벌어졌을 뿐. 다행히 수도권으로 올라와 자리를 잡으면서 일적으로나 마음적으로 통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었지만, 10대와 20대의 가장 뜨거웠던 시절을 공유한 옛 친구들과 진정한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건 가끔 씁쓸함을 남긴다.
문득 이런 상상을 해본다. '만약 내가 20년을 수도권에서 보냈다면 어땠을까?' 주변에서 사업하는 분들을 보면, 어릴 적부터 비슷한 일을 꿈꾸거나 대단한 성취를 이룬 사람들과 교류하며 자란 경우가 꽤 많다.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환경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게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나 싶다.
이제는 대부분의 친구들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다.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바쁘게 살아간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한창 손이 많이 가는 아이를 키우는 수도권 유부남이 친구들을 만나겠다고 홀로 고향 포항까지 내려가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포항에 같이 내려간다 한들, 내가 친구들을 만나러 훌쩍 나가버리면 아내는 불편한 시댁에 홀로 남아 독박 육아를 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상상만 해도 아내에게 너무 미안하고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삶의 방향이 달라지고, 각자의 가정을 지키느라 옛 인연들과 서서히 멀어지는 것. 어른이 되어가는 인생이란 원래 다 이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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